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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우리 인류의 창조적인 노력과 표현의 결정체입니다. 미술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우리의 역사와 다양한 가치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담아내는데요,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특정 작품들이 큰 금액에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곤 합니다.
이우환, 'From Point',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80 x 80cm, (2ea), 2015
낙찰가 ₩2,200,000,000 (2021-06-22, 서울옥션)
Barnett Newman, 'Onement Ⅵ', oil on canvas, 305 x 259cm, 1951
낙찰가 $43,800,000 (2013-05-14, Sotheby's, New York)
박서보, '묘법 No.110218',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65 x 260cm, 2011
낙찰가 ₩620,000,000 (2022-01-25, 서울옥션)
커다란 화면에 듬성듬성 자리잡은 붓자국들이나, 흩뿌려진 물감 자국, 캔버스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선 등. 쉽게 이해할 수 없고, 난해하다 여겨지는 현대 미술품들이 수십, 수백억 원에 거래가 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나아가, 미술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작품들이 미술 시장에서 높은 거래가를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예술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사례를 통해 미술 작품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 잭슨 폴록
잭슨 폴록은 1912년 1월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코디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년기 시절부터 꾸준히 미술 공부를 지속해온 폴록은 1940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상 회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가 됩니다.

잭슨 폴록은 미술을 예술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정의한 예술가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초현실주의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잭슨 폴록은, 당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화두였던 '무의식'에 집착했습니다. 캔버스 위를 직관과 충동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가던 그는 기어코 캔버스를 이젤 위에서 바닥으로 옮겨둔 채, 막대기와 붓에 묻은 물감을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현대미술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잭슨 폴록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목적, 방식, 그리고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폴록의 작품은 감정, 상상, 그리고 표현의 공간임과 동시에, 유럽 중심의 서양 미술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폴록의 작품은 예술이 어떻게 경험되고 표현되는지에 대한 관점을 뒤바꿉니다. 그는 관객에게 '무엇’을 표현했는지 보다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폴록의 작품은 관객에게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고 감정의 폭포를 경험하도록 유도합니다. 이것은 미술이 감정과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매체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폴록의 작품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폴록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데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총성 없는 전쟁'
폴록이 활동하던 1940 년대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극한의 대립을 보이던 당시, 폴록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 · 자유 · 순수성 같은 개념들은 자유주의 세계가 공산주의에 맞서 외치던 가치관과도 일치했는데요, 이를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인 CIA는 소련과의 이념싸움, 즉 ‘문화전쟁’에서 승리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파시즘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는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인기를 크게 높이게 됩니다. 공산주의는 특히 서유럽의 저명 예술가들과 문학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는데요, 피카소 등 유명 인사들이 가입하기도 했을 만큼 공산당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흔들림에 CIA는 ‘문화전쟁’의 핵심 작전세력으로 뉴욕현대미술관 MoMA(Museum of Modern Art)의 관계자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CIA의 목표는 소련의 미술과 대비되는 미술을 미국의 미술로, 나아가 세계의 미술로 진흥시켜 미국의 사상적 · 문화적 우위를 각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문화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인사들과 손을 잡았는데요, 뉴욕에서 활동한 비평가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국외뿐 아니라, 미국 안에서도 추상표현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린버그는 평소 ‘회화는 회화만의 순수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회화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잭슨 폴록의 회화는 곧 그린버그의 눈에 들게 됩니다.

잭슨 폴록을 만나기 전까지, 그린버그는 피카소를 최고의 예술가로 칭하였습니다. 피카소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에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원근법을 파괴한 혁명가였는데요, 여러 방향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에 표현한 그의 입체주의(큐비즘)는 당시 여러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Guernica, oil on canvas, 349 x 776cm, 1937
그럼에도 피카소의 작품에는 피사체와 배경이 존재한다는 한계가 있었고, 조금 더 본질적인 회화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린버그에게, 물감의 배열만으로 이루어진 잭슨 폴록의 회화는 순수한 회화의 결정체였습니다. 이는 결국 그린버그로 하여금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예술의 미래임을 선언하게 만들었는데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잭슨 폴록을 필두로 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전 세계에 자유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데에 성공하게 되고,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폴록은 경매마다 최고 낙찰가를 갱신하며 유럽 중심의 서양미술사에 미국의 족적을 남깁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No.5, oil on canvas, 120 x 240cm, 1948
낙찰가 $1,400,000,000 (2006-11-01, Sotheby's, New York)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No.19 oil on canvas, 78.4 x 58.1cm, 1948
낙찰가 $58,400,000 (2013-05-15, Christie's Auction House, New York)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나, 길가에 떨어져 있는 작은 돌멩이와 같은 다양한 물건들도 나만의 추억이나,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면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하나의 작품에는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물질적 배경들이 존재하고, 모든 배경들이 한 데 모여 작품의 가치를 형성하게 됩니다.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아본다면 조금 더 즐겁고 풍부한 감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